클릭! 이 사람 I 부안에서 새롭게 펼치는 음악인생 김성훈 씨

김성훈(사진·49)씨가 음악의 꿈을 꾸기 시작한 때는 초등학교 3년 때다. 당시 부안 동양극장 연예인 리싸이틀이 성행 했을 때 그때, 김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래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는 김씨 그때부터 음악의 꿈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집안의 반대로 그 꿈을 마음속에만 묻고 살았던 그는 음악의 열정을 부안중학교 밴드부와 타 지역 고등학교에 입학해 합창단원에 들어가면서 그 꿈을 키웠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의 꿈을 실현하기 시작한 때는 대학교 때부터다. 경기대에 입학한 그는 자신이 꿈꾸던 음악을 하기위해 교내 보컬을 결성했다. 락밴드로 그룹이름은 로커빌이다. 지금도 명맥이 이어갈 정도로 전통이 있는 밴드다.

그때 당시 김씨가 그룹의 리드싱어로 노래를 불렀다. 학교축제나 행사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대학교가요제까지 출전했다. 그러나 본선직전인 예선 4차전에 머무르며 본선 진출을 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후 김씨는 군에 입대해 춘천 원통 12사단 보병으로 1년 근무 후 포병 대대밴드 로 2년  동안 활동하며 음악의 꿈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김씨에게 행운과도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김씨는 군 전역 후 1987년 “행운을 드립니다~ 여러분께 드립니다~”로 잘 알려진 ‘강병철과 삼태기’를 만나 음악 활동을 하게 된다. 당시 강병철씨는 기획사를 준비 중이었고 강씨 눈에 띤 김씨는 가수 데뷔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데 1988년 11월 22일 멤버들이 타고 있던 차가 전복되고 말았다. 그때 다른 멤버들은 부상을 입는데 그쳤지만 안타깝게 강씨는 그 자리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인터뷰 중 김씨 눈을 잠깐 바라봤다. 그때가 떠오르는지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김씨는 “강병철 형님이 손수 라면을 끓여줬던 일이 가장 기억이 난다”며 “믿고 따르던 형님을 그렇게 작별인사도 없이 보내 드린 것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프다”라며 나지막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일이 있은 후 김씨는 잠시 방황을 하다가 1990년 ‘이방과 사또’라는 듀엣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활동을 해오던 중 자신의 추구하던 음악세계와 너무 달라 1992년 6시내고향 정읍 편을 끝으로 모든 가수 활동을 접고 고향인 부안에 내려오게 된다. 그의 음악 열정은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어 부안에서 새롭게 펼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물의거리에 오면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 (사)한국연예협회부안지부에서 활동 중인 김씨는 회원들과 함께 국가유공자음악회, 경찰청 가족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 면민의 날, 석정문학제 등 다 방면으로 음악활동 하고 있다. 그런 김씨의 노력을 인정해 지난 10월에 열린 부안예술제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현재 김씨는 물의거리 2층에 ‘몽마르주’라는 소박한 라이브 주점을 운영한다.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 또 서로의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그의 음악 열정의 공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김씨에게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소망이 있다.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본인과 음악코드가 맞는 사람과 듀엣을 결성해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나 잘 알려진 노래를 통해서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는 것. 또 지난날 날개를 채 펼치지도 못한 ‘꿈’ 자신만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솔로 앨범’을 가져 보는 것이다. 오늘도 그는 자신의 공간에서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클릭! 이사람’은 향우와 부안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