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I 다문화가정 이루며 사는 핀키 이그나시오 씨

   
 
핀키의 하루는 바쁘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셋째딸 돌보랴, 다문화센터 수업 나가랴, 틈틈이 개인 교습하랴, 정신없이 하루가 지난다. 필리핀 루선섬에서 시집 와 어느덧 한국생활 15년째를 맞이하는 핀키 이그나시오(39)의 한국생활 적응기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시집온 지 삼년 만에 남편을 잃고 타국에서 10여년을 넘게 혼자 살면서 두 딸을 예쁘게 키워냈다. 영어학원 강사, 개인과외 등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악바리가 따로 없을 정도다.

험한 세상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한 그녀만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핀키는 늘 씩씩했다. 초창기에 시집와 경험이 많은 그녀였기에 새내기 이주여성들에게 큰 언니 역할을 하였고, 밝고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주위에 늘 친구들이 많았다.

그녀도 맨 처음 한국생활의 적응이 결코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갓 시집와서 한국말이 통하지 않아 시어머니와의 오해도 생겼다. 게다가 남편은 폐암에 걸려 어린자식 둘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렸고,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낯선 타국에서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이 그녀를 다시금 일으켜 세웠다. 딸린 자식이 둘이나 있었다. 다행히 필리핀에서 대학을 마친 그녀에게 학원강사 일자리가 주어졌다. 매사에 딱 부러진 성실한 그녀였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하여 주위의 신임을 얻어나갔다.

눈물겨운 한국생활 적응기는 KBS 방송국까지 알려져 인간극장에 출연하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래도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가난했고, 삶의 무게는 버거웠다. 아빠 없이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아팠다.

특히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자니 한숨 쉬는 일이 잦아졌다. 교육문제가 제일 큰 관건이었다. 전라도 사투리까지 구사할 정도로 우리말에 능숙한 그녀였지만 아이들이 숙제를 질문해 올 때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차라리 영어라면 쉬울 텐데...’ 우리말의 깊은 뜻을 모르니 어떻게 지도를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아빠의 빈자리를 실감하던 차에 몇 년 전 지금의 남편 최용규(42)씨를 만났다. 상처가 많은 그녀가 재혼을 결정하기까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렇지만 남편의 깊은 사랑으로 결실을 맺어 새 보금자리를 꾸몄다.

핀키는 그리 풍족하지 않지만 아이들 크는 재미에 결혼생활이 만족스러웠다. 한국여자들처럼 부부싸움을 하고 술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때로는 바가지도 긁어댄다. 이제 그녀는 한국 아줌마가 다 됐다. 그런데 그녀에게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몇 달 전 큰 딸아이가 갑자기 뇌종양 진단을 받고서 큰 수술을 받았다. 청천벽락 같은 현실에 핀키는 다시 한 번 아득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돼 아이는 다시 건강해졌다.

핀키는 요즘 고향생각에 자주 젖어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꿋꿋했던 그녀가 큰일을 겪고 난 뒤 엄마에게 마냥 달려가고 싶어진다. 요즘 성당에 자주 들러 기도하는 그녀는 큰 욕심이 없다. 그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행복한 웃음꽃이 그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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