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I 미림양복점 주인 김종희 씨

   
▲ 김종희 씨
남성패션의 명가(名家)로 자리 잡았던 맞춤양복점. 언젠가부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양복점들이 기성복에 밀려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유일하게 40여년이 넘는 세월을 한자리에서 꿋꿋이 지켜온 미림양복점을 찾았다.

부안읍 서외리 군청 앞에 위치한 미림양복점(대표 김종희·67·사진)의 낡은 간판에서는 세월의 정겨움마저 묻어난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멋쟁이들이 입었던 맞춤양복. 6,70년대 부안읍내만 해도 30여개의 가게가 줄지어 있어 요즘 메이커 따지듯이 그 당시 경쟁이 치열했다.

김 대표가 양복 일을 하게 된 계기는 16세 때 가출로부터 시작됐다. 역전에 가방을 던져놓고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처음 접한 곳이 양복점이었다. ‘시다’생활을 하면서 기술을 익힌 그가 악착같이 열심히 일한 덕분으로 스무 살의 젊은 나이로 서울 의정부에 양복점을 차렸다.

그런데 고향이 몹시 그리웠던 김 대표는 객지생활을 접고 부안에 내려와 터를 잡았다. 그때의 미림양복점은 지금껏 42년 동안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다. 한때 주문량이 밀려 종업원을 너 댓 명씩 거느리며 밤샘 작업을 하던 미림양복점은 세월이 흘러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잘나가던 양복점은 80년대 기성복에 밀려 점차 주문량이 줄어들면서 이제는 단골들에 의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삼남매를 거뜬히 키워낸 김 대표는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들을 외면할 수 없어 소일거리 삼아 지금도 옷을 짓는다.

평생을 양복만 만들었으니 그의 재단 솜씨는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지만 지금도 기술을 배우는 마음으로 일한다는 그는 100% 만족해 본 적이 없다. 마음먹은 대로 옷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을 때는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수정을 거듭한다.

기성복이 맞춤복을 대신하게 된 요즘에도 김 대표의 맞춤복은 일주일 이상 걸린다. 그 나름대로 세심하고 꼼꼼한 노력을 기울이며 재단부터 미싱 일까지 혼자 척척 해내는 그는 천상 ‘양복쟁이’였다. 유행이 잘 타지 않는 맞춤복은 바느질 한 땀부터 다르기 때문에 두고두고 입을 수 있어 매우 실용적이란다.

알고 보면 오히려 맞춤복이 더 싼 가격이라는 예찬론을 펼치는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만든 옷을 입어본 손님들이 흡족해 할 때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김 대표는 마음이 흐뭇해진다. 한 번 그의 솜씨를 거쳐 간 사람들이라면 어느새 단골이 되고 만다.

또한 요즘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그의 양복점을 다시 찾고 있다. 이곳에서는 굳이 비싼 가격이 아니더라도 이태리 명품 뺨치는 스타일과 질 좋은 원단으로 양복 한 벌 맞추는데 30만원에서 50만원이면 최고급으로 맞출 수 있다.

나만의 개성을 살린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옷. 멋쟁이 뿐만아니라 어깨처짐이나 특수체형, 그리고 허리인치가 많이 나가는 ‘큰 손님’ 등 기성복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부안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미림양복점에서는 50여년 경력의 정통기술자가 만드는 솜씨로 품격 높은 옷을 맞출 수 있어 실속파 멋쟁이들의 단골이 솔솔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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