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생명의 무게를 재어보려는 생각과 도덕을 잃어버린 정치의 수판을 내려놔야

“여기 담아 주세요.” 준비해 간 그릇을 얼른 내밀자 비닐 쓰레기를 줄여 보려는 속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생선전 아주머니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고등어 한 마리를 덤으로 얹어 주신다.

아이들에게도 과자 한 봉지, 장난감 하나 선뜻 사주질 못하고 망설이곤 한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아이들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그것들이 결국 처리 곤란한 쓰레기로 남게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쓰레기 대란과 행정의 무대책

이삿짐을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를 한가득 싣고 줄포 매립장에 가 본 일이 있다. 내 딴에는 재활용할만한 것들을 애써 따로 모아 갔는데, 매립할 쓰레기 더미에다 함께 던져 놓으라고 한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차를 돌려 나오는 길에 폐비닐 더미 위로 분주히 흙을 퍼 나르는 포클레인의 삽날을 볼 수 있었다. 매립해서는 안될 재활용 쓰레기까지를 매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뒤 면사무소로부터 날아온 쓰레기 처리비용 영수증은 나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분담해야 할 비용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쓰레기 매립장 및 소각장 설치 여부를 놓고 지역주민과 부안군이 충돌하고 있다. 지금의 매립장만으로도 쌓인 불만과 피해가 적지 않았을 것인데, 여기에 또다시 매립장과 소각장을 지어야겠다는 군의 일방적인 계획이 지역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행정의 무대책과 불성실한 태도에 분노한 주민들이 급기야 매립이 금지된 쓰레기의 반입을 막고 나서자 군에서는 ‘철저한 분리수거’만을 강조하며, 지역주민과 군민들에게 쓰레기 대란의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하다. 아예 주민간 다툼으로 몰아가려는 얄팍한 정치적 술수라 아니할 수 없다.

쓰레기, 매립에서 재활용으로

그렇다면 부안군에서는 그동안 쓰레기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고 있었을까? 자료를 살펴보니 2002년과 2003년 사이 재활용의 비율은 세 배 감소하고 매립은 두 배 증가했다. 매립 위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는 이야기다. 쓰레기의 양은 늘어나는데 파묻기로만 들자면 얼마 못가 매립장을 다시 마련해야 할 판이다. 쉽게 소각장으로 눈을 돌릴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앞서 소각장을 들여놓은 다른 지자체들의 말많은 운영실상으로 보아 적절한 방법은 아닌 듯싶다.

이제 환경관리 분야에서 단연 으뜸이라는 남해군의 예로 잠시 눈을 돌려보자. 인구 6만여명의 소읍 남해군은 쓰레기 배출량을 원천적으로 줄이고, 발생한 쓰레기의 재활용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이른바 환경생태도시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명예환경감시원제와 환경주부대학을 통한 녹색가정 만들기, 하천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수초골재식 오수처리시설,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환경·농업·관광이 복합된 ‘남해에코파크’ 조성 등이 주요 사업이며 성과물이다. 주민의 편에 선 열린 행정과 실천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성공의 결정적 열쇠였음은 물론이다.

산을 옮길만한 좋은 계획이라도 함께 거들어 이루어 내는 민초들이 없다면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물며 그것이 밀실에서 졸속으로 만들어진 정책이라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쓰레기 배출하는 나도 ‘중죄인’

나의 무심한 행위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부르는 일이라면 그것은 이미 죄이다. 그런 점에서 날마다 온갖 쓰레기로 땅을 더럽히며 살아가고 있는 나는 평생을 속죄해도 모자란 ‘중죄인’인 셈이다.

오늘 우리에게 닥친 환경의 문제는 ‘빠름’과 ‘편리’에 길들여진 삶의 문화로부터 온 것이다. 쓰레기 문제를 졸속과 편의적 정책으로 풀어낼 수 없는 이유이다. 돈으로 생명의 무게를 재어 보려는 물량적 사고와 도덕을 잃어버린 정치의 수판(數板)을 내려놓고 열린 가슴으로 다가설 때 줄포의 아픔이, 그 온 생명의 아픔이 비로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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