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며칠 전 봄을 맞은 새만금지역을 둘러 보다 부안의 지인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장례를 치룬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단다. 전주에 거주하다 보니, 부음소식을 전달받지 못했던 것이다. 새만금지역에서 전주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한 달 전 서대석 대표님과 통화한 적이 있다. 고창지역의 마을지를 발간한 후, 위도에도 이와 같은 마을지가 필요함을 설명하기 위해 통화했던 것이다. 통화 당시 서대석 대표님은 평상시와는 목소리가 달랐다. 감기가 걸렸는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었고 수술을 한 후 퇴원해 집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다고 했다. 부안에 지방의제의 추진상황에 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건강 잘 챙기시라고 말씀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새만금 등 한국갯벌에 찾아오는 도요물떼새들의 서식상황과 북상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 금강하구 갯벌과 새만금, 곰소만 갯벌을 돌아보며 조사에 열중하다 11일에 이 같은 비보를 접한 것이다.

서대석 대표님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위도에 핵폐기장이 유치 강행을 하면서 부안성당에 같이 거주하면서 핵폐기장 유치를 통한 지역발전이 아니라, 위도와 부안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지역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도 했다. 또한 위도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조사와 문화조사 등에 같이 하셨고, 본인 소유의 펜션에서 숙박과 식사도 아무 대가없이 제공해 주시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서대석 대표님은 정부가 강행하는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새만금사업으로 인해 위도지역의 생태계 변화와 주민들의 어업소득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하고, 주민 중심의 기자회견에도 적극 참석하셨다. 위도지역의 어민들이 알면서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 스스로 공개적으로 나서서 증언하셨던 것이다. 반핵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서대석 대표님은 새만금사업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데 부안지역의 대표로 적극 나서셨다. 그래서 부안 반핵대책위의 공동대표이자, 부안새만금생명평화모임의 공동대표, 새만금생명평화전북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셨다. 부안지역에서 반핵활동이 마무리 된 이후에도 새만금사업에 대해서 꾸준한 역할을 해 주셨다.

반핵활동이 정리되면서 지속가능한 부안사회를 만들기 위해 부안군민회의와 부안지역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부안독립신문의 대표이사를 맡아 남다른 열정을 보여 주셨다. 본인이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쉽게 맡지 않으려는 일들을 여러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일을 맡았다.

이 같은 일들을 하느라 대전에 사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 내가 2007년말에 전주로 옮긴 이후에도 서대석 대표님과 자주 전화 통화하거나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부안과 위도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고민하셨고, 지방의제 추진위회를 부안에 설립하기 위해 현 부안군수와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서대석 대표님이 꿈꾸었고, 고민하셨던 일들을 뒤로 하고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고, 많은 역할이 기다리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놓으셨다. 서운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서대석 대표님과의 좋은 인연을 간직하고, 나중에 좋은 세상에서 만날 것을 기도드린다. 지금도 슬픔을 잊지 못하시고 계실 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보내고, 대표님의 활동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시길 빌어본다.

서대석 대표님의 부음에 슬픔을 같이 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좋은 세상으로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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