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이재용처럼 돈을 대물림하는 얘기가 아니다. 북한처럼 권력을 대물림하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일을 대물리며 하는 얘기다.

몇 대째 가업을 이어 음식을 만들거나 연장을 만드는 가문에 대한 얘기들을 듣는다.

독일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회사는 3대째 가업을 대물림하고 있다.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맛의 혈통을 잇기 위해 애쓴다. 사장은 회사의 장부를 관리하는 일보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오염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기계로 대체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란다.

오스트리아에는 우산만 몇 대째 만드는 집도 있단다. 10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맛있는 우동을 만드는 작은 가게를 일본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손님에 대해 예를 다하는 온천 여관을 몇 백년간 가업으로 이어오는 집도 있다. 지진으로 어찌되었을까 걱정이다. 지진보다 방사능이 더 걱정이다. 

남의 나라만 짱짱하게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세의 침략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티브이나 라디오에 떠들썩하게 나오지는 않았으나 내가 아는 행산 양반은 500년이 넘게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고 있다.  어쩌면 천년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동네사람들까지 합치면 몇 천 년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80객이 다된 행산 양반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걸어서 돌아다녀보기’다. 내가 짓든 남이 짓든 내 땅이든 남의 땅이든 곡식이 잘 되고 있는가, 곡식이 잘 될 준비를 하고 있는가를 걸어서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생각해 본다. 이미 농사에서는 은퇴를 했으나 이렇게 들판을 돌아다니며 땅과, 곡식과, 사람과 대화하며 땅기운의 대를 물리는 일이 행산 양반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천년동안 불이 꺼지지 않은 대장간, 1500년의 빛을 이어오는 도자기 가마, 아버지에서 아들로 2000번을 대물림하는 벼 종자와 그 종자를 담아두는 2001년 된 씨오쟁이가 있는 마을, 3000년이 지나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 집과 목수의 기술... 이런 것들은 불가능한 일인가 ?

우리가 얘기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란 일을 대물림할 수 있는 사회이다. 대대로 더욱 발전시키거나 고유의 비법을 유지하며 자기도 먹고 살고 남도 먹여 살리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회가 지속 가능한 사회이다.

자기 살자고 남을 죽이는 사회는 오래 못 간다. 오늘 살자고 내일의 밑천을 당겨쓰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돈 독이 올라 중소기업이 죽든 말든 저만 세금 안내고 애비의 재산을 가로챌 수 있는 재벌들이 득세하는 사회는 대를 물려 일할 수 없는 사회이다. 뭇 생명이야 죽든 말든 굽은 강을 반듯이 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위정자가 있는 사회에서 대를 물리려면 조심해야 한다. 그 굽은 강 모퉁이에는 몇 천 년의 대를 물려 만들어진 그 무엇이 있었을 게다.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기름을 독점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국가가 있어서는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지진보다,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원자력 발전소의 통제되지 않는 위험이 있어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낫 하나 만드는 일, 쌀 톨 만드는 일, 비바람을 피하는 집을 한 채 짓는 일, 이런 작은 일들이 끊기지 않고 잘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욕망을 다스려야하는지를 일본 후쿠시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핵발전소 대재앙의 혹독한 댓가를 치르며 인류는 공부하고 있다. 자연이 만든 지진과 쓰나미는 몇 만의 목숨을 앗아갔으나 인간이 만든 핵발전소는 앞으로도 몇 대에 걸쳐 인간의 대를 끊을지 모른다. 

나는 대를 이어 농사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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