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는 부안 30

   
 
어렸을 때 귀한 김 한 장의 추억. 할머니는 정월 대보름이면 들기름 바른 고소한 김 한 장을 건네 주셨다. 김을 넷이나 여덟 쪽으로 나누어 손에다 놓고 밥을 얹어 간장을 쳐서 먹는다. 동생은 한 수 위로 수저에 밥을 떠서 잘게 찢은 김을 간장에 찍어 붙여먹으니 김 한 장이면 밥을 다 먹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기섭, 강민자 부부는 하서면 백련리 바닷가에서 겨울 내동 김을 만든다. 이곳은 눈도 많고 바람도 세서 체감온도는 부안읍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다. 작년 11월 중순에 시작한 김 만들기는 4월 12일에야 마무리 되었다.

김 만드는 일은 잠과 싸우는 과정이다. 기계를 24시간 가동을 해야 하니 누군가는 기계를 살펴야 하는데 힘든 일이라 일하려는 사람들도 없어 부부가 교대로 기계 옆을 지킨다. 공장에서는 일손이 더 필요한데 완성된 김을 받아서 묶어야 하고 원료가 되는 생김을 받으러 바닷가로 다녀야 한다.

부안에는 바닷가 마을마다 한두 개의 김 공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15~6개가 가동 중이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나면서 이곳 사정도 사뭇 달라졌다. 우선 바닷물을 끌어들여야 좋은 김을 만들 수 있는데 해수유통을 자주 안하니 염도가 옅어졌고 거기다가 새만금 내측 물 높이를 1m 60㎝을 내렸으니 바닷물을 찾아 더 긴 호스를 대서 바닷물을 끌어들여야 한다. 너무 추워 호스라도 얼 양이면 어려움은 더해진다. 이기섭의 공장도 바닷물을 찾아 2㎞가까이 호스가 연결되었다.

새만금은 지역 정치인들에게 선거 때마다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매력 있는 소재였다. 하지만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오래지만 큰 진척은 보이지 않는다. 개발이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새만금이 우리 지역의 화두가 되는 사이에 바다에 목을 매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아직도 새만금 내측에는 배를 부리는 사람들과 호미 하나 들고 바다를 들며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정치인들의 관심에는 멀다. 이런 속에서도 백련리 김 공장의 이씨 부부는 아직도 바다를 마음에 두고 질 좋은 김 생산을 위해 환한 얼굴로 희망을 노래한다. 희망을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터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둥켜 안아야할 몫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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