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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한 귀퉁이에서 닳은 구두 뒷굽을 갈아주고 실밥 터진 곳을 꿰매주는 이가 있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하루 종일 낡은 신발을 수선하는 구두수선공 박태화(53)씨다. 

부안읍 시장 입구 우송스포츠센터에 붙어있는 한 평 남짓의 공간이 그의 일터다. 30여년 넘게 붙박이처럼 그 자리에서 일해 온 그는 영하의 꽃샘추위도 대수롭지 않다. 겨우 한사람이 몸을 돌릴만한 작은 공간에서 전기히터 하나를 의지한 채 하루 종일 구부리고 앉아 일하는 박 씨는 그 온기마저도 손님에게 내어준다.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것 같은 신발들이 박 씨의 손에 들려지면 일일이 송곳바늘로 꿰매고 다듬어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새것처럼 말끔히 마무리가 된다.

박 씨를 만난 김에 뒷축이 닳은 기자의 구두를 잽싸게 벗어 내밀었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서 험하게 신었던 신발이 그의 손을 거치자 금세 새것으로 거듭난다. 서비스로 구두약을 정성스럽게 칠하면서 “좋은 신발일수록 잘 관리를 해줘야 오래 신는다”며 반질반질 광을 내주었다.

연륜을 말해주듯 굵고 거친 손마디를 가진 박 씨. 검은색 여자 구두를 발 모양의 쇠작업대에 쑥 끼워 넣고는 접착제 칠한 밑창을 정성껏 열처리한 뒤 덧대어 망치로 두드린다. 작은 쇠못을 꼼꼼하게 박고는 끌칼로 삐죽이 나온 고무판을 일필휘지로 잘라냈다. 신발 밑창을 구두 굽에 맞춰 깎아내는 그의 손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구두수선을 천직으로 여기는 박 씨는 “일터에 나와 있으면 하루 종일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고 말한다.

부안읍 출신으로 “이 두 손으로 자식새끼 셋을 키워냈고, 사업하다 진 빚도 값고서 내 집도 장만했다”며 비록 푼돈 벌이지만 직업을 참 잘 선택했다는 그는 왠만한 직장인 부럽지 않다며 수 십 개가 넘는 통장을 보여준다.

그는 한때 양화점을 운영했으나 3년 만에 접고서 서울로 상경해 구두공장에서 구두를 만들면서 가난 때문에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배운 게 구두 만드는 기술인지라 그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구두닦이 일이었다.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신의 신발을 닦아보면서 연습한 그는 예사롭지 않은 구두 닦는 솜씨에 단골이 늘어 하루 200켤레 이상을 닦았다. 그의 비결은 바로 신발을 불에 달구지 않고서 정성스레 반짝반짝 광을 내는 거였다.

그는 이 세상에 힘들이지 않고 돈 버는 일은 없다고 여긴다. 구두수선 하느라 갈라터지고 굳은살이 벤 손으로 만든 멋진 작품에 이제 부안뿐만 아니라 인근 김제, 정읍까지 소문이 나 단골들이 찾아오고 있다.

특히 박 씨의 구둣방은 사랑방 역할을 하는 정보통이다. 객지에서 처음 온 사람들은 박 씨에게 땅 시세나 집값을 물어보기도 하고, 가정주부, 직장인, 멋쟁이 아가씨도 온다. 그는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는 부안의 소식을 그대로 앉아서 저절로 훤하게 꿰뚫게 만든다.

구두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지만 망가진 구두를 고치는 일은 예술이다. ‘예술가’ 박 씨의 손을 거치면 모든 게 새롭게 승화되고 거듭난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하는 일이 힘들만도 할 텐데 천성이 부지런한 박 씨는 가정이 편안해야 일도 잘된다며 집안일도 척척 도와주고, 새벽 4시면 일어나 운동도 할 겸 신문배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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